화장품을 뒤집어 보면 깨알 같은 글씨로 성분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습니다. 읽어 봐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그냥 앞면 광고 문구만 보고 사게 되죠.
그런데 이 목록은 아무렇게나 나열된 게 아닙니다. 많이 든 성분부터 적는다는 규칙이 있어서, 성분 이름을 하나도 몰라도 순서만으로 그 제품의 실체를 꽤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규칙에는 중간에 무너지는 지점이 하나 있는데, 그 지점을 모르면 오히려 잘못 읽게 됩니다.
결론부터
- 전성분은 함량이 많은 순서로 적힙니다. 그래서 목록 앞쪽 대여섯 개가 그 제품의 뼈대입니다.
- 단, 함량 1% 이하부터는 순서를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뒤쪽 순서로 함량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 광고로 앞세운 추출물이 목록 한참 뒤에 있다면, ’함유’는 맞지만 양은 아주 적을 수 있습니다.

규칙 하나: 많이 든 것부터 적는다
요리 레시피에서 양이 많은 재료부터 적는 것과 같습니다. 화장품 전성분도 함유량이 많은 성분부터 차례대로 적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목록 맨 앞에 무엇이 있는지가 그 제품의 정체를 말해 줍니다. 토너라면 정제수가 맨 앞에 오고, 그다음에 글리세린이나 부틸렌글라이콜 같은 보습 베이스가 따라옵니다.
여기서 자주 하는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물이 제일 앞에 있네, 물장사네” 하는 반응인데,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합니다. 토너나 로션은 원래 물이 뼈대인 제형입니다. 물을 빼면 그건 화장품이 아니라 오일이 됩니다. 앞자리에 있다고 나쁜 성분, 뒤에 있다고 좋은 성분이 아닙니다.
규칙 둘: 1%부터는 순서가 흐트러진다
이게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부분입니다.
함량이 1% 이하인 성분들은 순서를 지키지 않고 적어도 됩니다. 소량으로 들어가는 성분이 워낙 많아서 그 미세한 차이까지 순서로 줄 세우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험 성적으로 비유하면, 상위권은 등수 차이가 실제 실력 차이지만 하위권으로 갈수록 등수 차이가 별 의미 없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문제는 성분표에 “여기부터 1% 이하입니다”라는 표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경계는 소비자가 알 수 없고, 어디까지나 추정만 가능합니다.
그래도 눈대중으로 짚는 요령은 있습니다. 보통 방부제(페녹시에탄올 등), 향료, 색소, 점증제, pH 조절제가 나오기 시작하는 지점부터는 대체로 1% 아래 구간이라고 봅니다. 이 성분들은 원래 그 이상 넣지 않는 성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규칙 셋: ’추출물 함유’의 함정
“한우 들어간 국물”이라고 크게 써 붙였는데 정작 고기는 몇 점뿐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앞면에 크게 적힌 성분이 뒷면 전성분에서 어디쯤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목록 한참 뒤, 방부제와 향료 사이에 끼어 있다면 ’함유’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지만 피부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만한 양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에 최근 반가운 변화가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는 추출물을 그냥 “○○추출물”이라고만 적으면 됐는데, 추출된 물질과 추출에 쓴 용매를 나눠서 적도록 표기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포도즙”이라고만 쓰던 것을 “포도에서, 무엇으로 뽑았는지”까지 풀어 쓰게 한 셈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뽑았는지가 더 투명해집니다. 다만 그 용매가 최종 제품에 남지 않으면 용매는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하면 되나
매장에서 30초 안에 할 수 있는 순서입니다.
- 앞의 다섯 개만 읽습니다. 여기가 제품의 8할입니다. 물·보습제·오일·유화제 정도가 보통입니다.
- 앞면 광고 성분을 뒷면에서 찾습니다. 앞쪽에 있으면 진짜로 넣은 것, 맨 뒤라면 이름값입니다.
- 향료·색소의 위치를 봅니다. 민감한 피부라면 이 둘이 어디쯤 있는지가 참고가 됩니다.
- 뒤쪽 순서로는 따지지 않습니다. 1% 아래 구간은 순서 자체가 정보가 아닙니다.
이런 광고 문구는 이렇게 읽으세요
| 광고 문구 | 이렇게 읽으면 됩니다 |
|---|---|
| ○○추출물 함유 | ’함유’는 양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 뒷면에서 위치를 확인하세요 |
| 성분 98% 자연 유래 | 대부분 물입니다. 물도 자연 유래로 셉니다 |
| 무려 30가지 성분 배합 | 가짓수가 많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1% 아래 구간이 길어질 뿐입니다 |
| 유해 성분 무첨가 | 애초에 잘 쓰지 않는 성분을 뺐다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성분이 앞쪽에 있는지 뒤쪽에 있는지는 광고가 말해 주지 않는 정보입니다. 그래서 뒷면을 보는 30초가, 앞면을 열 번 읽는 것보다 낫습니다.
참고한 자료
- 전성분 함량순 표기 기준 — 화장품 표시기준(식약처) /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https://easylaw.go.kr/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1301&ccfNo=4&cciNo=1&cnpClsNo=2
- 추출물 관련 화장품 성분사전 통칙 개정 공포 안내 — 대한화장품협회: https://kcia.or.kr/cid/cs/notice.php?type=view&no=15605
- 추출물화장품, 이제 ’추출용매’까지 정확히 표기 — 헬스경향: https://www.k-health.com/news/articleView.html?idxno=66991
- 화장품원료 추출물, ‘추출물질+추출용매’ 별도 표기 개정 — 코스인: https://www.cosinkorea.com/news/article.html?no=49482
성분 이름을 다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앞의 다섯 개와, 광고 성분이 어디 있는지. 이 두 가지만으로도 살 때 속을 일은 확실히 줄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