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크림을 고르다 보면 꼭 마주치는 말이 있습니다. 유기자차와 무기자차. 어느 쪽이 더 좋은지 검색해 보면 “무기자차가 순하다”, “유기자차는 자극적이다” 같은 단정적인 말이 많이 나옵니다.
원료를 개발하는 입장에서 먼저 말씀드리면, 둘 중 무엇을 고르느냐보다 얼마나 바르느냐가 실제 차단력을 훨씬 크게 좌우합니다. 왜 그런지, 그리고 두 방식이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아래에서 풀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 유기자차는 자외선을 흡수해서 열로 바꿔 내보내고, 무기자차는 피부 위에서 반사·산란시켜 막습니다.
- 백탁이 뜨는 쪽은 무기자차입니다. 빛을 튕겨내는 광물 입자가 눈에도 하얗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 표시된 SPF는 정해진 두께로 발랐을 때의 실험값입니다. 얇게 바르면 숫자보다 훨씬 낮아집니다.
유기자차 — 자외선을 빨아들이는 방식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장면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아보벤존, 옥티노세이트 같은 유기 분자(탄소를 뼈대로 하는 분자)가 자외선 에너지를 분자 안으로 받아들입니다. 에너지를 받은 분자는 잠깐 들뜬 상태가 되었다가, 그 에너지를 아주 미세한 열로 바꿔 내보냅니다.
막이 얇고 투명하게 발리기 때문에 백탁이 거의 없고 산뜻합니다. 대신 흡수하는 과정 자체가 화학적인 반응이라, 사람에 따라 눈이 시리거나 자극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기자차 — 자외선을 튕겨내는 방식
거울이나 방패에 가깝습니다. 징크옥사이드(산화아연), 티타늄디옥사이드(이산화티타늄) 같은 광물 입자가 피부 표면에 얇게 깔려서 자외선을 반사하고 흩어 버립니다.
피부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적어 자극이 덜한 편이라, 민감한 피부나 아기용 제품에 자주 쓰입니다. 대신 빛을 튕기는 입자가 눈에 보이는 빛까지 함께 튕겨내기 때문에 하얗게 뜨고(백탁) 사용감이 무겁습니다.
| 유기자차 | 무기자차 | |
|---|---|---|
| 막는 방식 | 자외선을 흡수해 열로 방출 | 자외선을 반사·산란 |
| 대표 성분 | 아보벤존, 옥티노세이트 | 징크옥사이드, 티타늄디옥사이드 |
| 백탁 | 거의 없음 | 잘 생김 |
| 사용감 | 얇고 산뜻함 | 두껍고 무거운 편 |
| 자극 | 사람에 따라 눈시림·자극 가능 | 상대적으로 적은 편 |
한 가지 덧붙이자면, 최근 연구에서는 무기 입자도 반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외선의 일부를 흡수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무기자차는 100퍼센트 물리적으로만 막는다”는 설명은 조금 단순화된 표현입니다.
SPF와 PA는 서로 다른 것을 막습니다
- SPF는 주로 UVB를 막는 정도입니다. UVB는 피부를 붉게 타게 하고 화상을 일으키는 자외선입니다.
- PA는 UVA를 막는 정도입니다(+ 개수로 표시). UVA는 피부 속까지 들어가 주름과 색소침착 같은 노화를 부르는 자외선입니다.
그래서 SPF만 높고 PA 표시가 약한 제품은 “타는 것”은 막아도 “늙는 것”은 덜 막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표시를 함께 봐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어떻게 하면 되나

여기가 이 글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선크림의 SPF는 피부 1제곱센티미터당 약 2밀리그램을 발랐다는 전제로 측정합니다. 얼굴 전체로 치면 대략 반 티스푼 정도의 제법 많은 양입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얇게 바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차단력이 바른 양에 정비례해서 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절반만 바르면 차단력도 절반이 되는 게 아니라, 절반보다 훨씬 크게 떨어집니다. 위 그림의 곡선이 가파르게 꺾이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 양을 먼저 챙깁니다. SPF 숫자를 올리는 것보다 지금 쓰는 제품을 충분히 바르는 쪽이 확실합니다.
- 두 시간 간격으로 덧바릅니다. 땀과 시간이 지나면 막이 무너집니다.
- 사용감이 맞는 제품을 고릅니다. 무겁고 하얗게 뜨는 제품은 결국 덜 바르게 됩니다. 매일 충분히 바를 수 있는 제형이 나에게 가장 좋은 선크림입니다.
이런 광고 문구는 이렇게 읽으세요
- “무기자차라 순해요” — 경향일 뿐 규칙이 아닙니다. 같은 무기자차라도 제형과 입자 코팅에 따라 사용감과 자극도가 꽤 달라집니다. 성분 종류만으로 순함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 “유기자차는 피부에 흡수되어 위험해요” — 무기자차를 팔기 위해 유기자차를 깎는 문구입니다. 두 방식 모두 국내외에서 사용이 허가된 자외선차단 성분입니다.
- “SPF 50+ 하나면 충분” — 표시값은 정해진 두께로 발랐을 때의 실험 조건 값입니다. 숫자를 근거로 덧바름을 생략하라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 “백탁 없는 무기자차” — 입자를 작게 하거나 분산을 개선해 백탁을 줄인 것은 사실 가능합니다. 다만 “백탁이 전혀 없다”에 가까운 표현이면 유기 성분이 함께 들어 있는지 전성분을 확인해 보세요.
참고한 자료
- 대한화장품협회 — 자외선차단 성분·표시 관련 자료
- FDA Sunscreen Monograph (2021) — 자외선차단 성분 분류와 안전성
- Faurschou A, Wulf HC. The relation between sun protection factor and amount of sunscreen applied in vivo. British Journal of Dermatology, 2007 — 바른 양과 실제 차단력의 관계
두 번째 그림의 곡선은 위 연구에서 보고된 관계를 바탕으로 그린 근사 모형입니다. 제품과 사람에 따라 실제 값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선크림은 고르는 순간보다 바르는 습관에서 승부가 납니다. 오늘 쓰는 제품을 조금 더 넉넉히 덜어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